














기찻길
아버지는 소주병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이미 한 차례 술을 드시고 오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꼭 술을 먹으면 집에 오는 길에 소주를 사오셨다. 그리고는 인혜나 오빠를 앉히곤 술자리를 벌였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사온 게 분명한 오징어 회와 초장이 식탁에 올라갔다. 오빠가 익숙하게 소주잔을 꺼냈다. 젓가락은 꺼내지 않았다. 아마 설거지거리 만들기 싫다고 나무젓가락을 쓸 것이다. 아버지의 술버릇은 그랬다. 아버지는 자신의 잔을 채우고는 인혜에게 소주병을 내밀었다.
“한잔 받아라.”
인혜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지만 아버지는 어른이 줄 때는 받는 거라며 부득불 잔에 알콜을 채워 넣었다. 아버지의 숨에 따라 알콜이 들락날락했다. 오빠는 말없이 잔을 받았다. 아버지는 소주를 한 번에 털어놓곤 오징어 회를 초장에 비벼서 먹었다. 그 빨간 날것을 삼키곤 말을 했다.
“인혜야, 이제 곧 졸업인데……. 졸업하고 뭐할 건데?”
인혜는 소주잔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답했다. 술에 비친 얼굴은 이상했다.
“작가요. 아시잖아요. 소설 쓰고 싶은 거.”
아버지는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곤 오빠를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오빠는 아무 반응 없이 새로운 소주병을 깠다.
“인혜야, 니가 소설 쓴다고 한 지 올해가 몇 년째고?”
“3년 정도요.”
인혜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버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알콜 때문인지 답답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니 내년이면 졸업이다. 꿈 쫓는 건 대학생 때까지만 해야 되지 않겠나?”
인혜는 침묵으로 답했다.
“그 니가 목매던 신춘문예라는 거 지금쯤이제? 이번까지만 해라. 이번에 아니면 그만 포기해라. 마지막이다.”
이번에는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아빠!”
“시끄럽다! 어디서 소리를 지르노. 더 이상은 못 기다려준다. 니도 사정 알 거 아니가. 니 앞으로 빚이 얼만데. 그놈의 작가하면 갚을 수 있나. 학자금 대출 어떡할 건데? 빚이 4천만 원이다. 이번도 진짜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다. 알겠나?”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고, 오빠는 옆에서 아버지와 같이 소주를 들이켰다. 침묵을 지키다가 인혜는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골목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고양이는 인혜가 다가서자 재빠르게 물러섰다. 몇 걸음 물러서서 인혜를 바라보았다. 한 걸음 더 다가서자, 고양이는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마치 뱅갈 고양이처럼 생겼다. 그렇지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골목은 두 사람이 동시에 다니기도 버거웠다. 가로등은 그 좁다란 골목조차 메우지 못했다. 드문드문 그늘이 진하게 졌다. 인혜는 밝은 그늘에 들고 온 사료를 쏟아 부었다. 아버지는 사료를 사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와서 먹어.”
고양이는 담장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발걸음을 돌렸다. 골목 끝 쪽에 있는 그늘에 몸을 숨겼다. 벽을 기대고 섰다. 고양이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내려와 사료를 먹었다. 주홍빛 가로등이 고양이를 비쳤다. 콰득 콰득, 건 사료를 씹어 먹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인혜가 밤에 나가자 방백을 했다. ‘사람이 떳떳하게 살아야지.’, ‘당당하지 못하니까 밤에 나가는 거 아냐.’ 방백이므로 무시했다.
고양이는 밥을 먹었다. 인혜는 서늘한 벽에 서있었다. 고양이는 밝은 곳에 있었고, 그녀는 어두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잘 보였을 것이다. 고양이는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니까. 좁은 골목에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고양이와 인혜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경계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날카로운 금속음이 났을 때, 인혜는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사람이나 길고양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김정혁은 빵을 손으로 뜯다가, 막 생각난 듯이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 길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다.
“혹시 고양이 밥도 주고 다녀?”
인혜는 포크로 파스타를 동그랗게 말다가, 정혁을 바라보았다. 인혜는 대답을 하는 대신 동그랗게 만 파스타를 입으로 옮겼다. 야무지게도 씹어 넘기고 나서야 인혜는 대답을 했다.
“어제도 주고 왔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애가 한 명 있거든.”
정혁은 입에 파스타를 넣은 상태로 대답했다. 인혜는 그 모습을 보고 살짝 표정을 찡그렸으나, 정혁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듯 했다. 김정혁은 성은의 소개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입에 뭘 넣은 상태로 자신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며 26살이라는 소개를 늘어놓았었다. 그는 인혜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혹시 부모님께서 싫어하시지 않으셔? 어른들 도둑고양이라고 싫어하잖아.”
“별로 안 좋아하세요. 특히 아버지 쪽이요.”
인혜는 포크를 그릇에 달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나름대로 심기가 거슬린 것을 표현한 것인데, 그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계속 해도 돼?”
“아버지랑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아서 상관없어요.”
그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버지와의 돈독한 사이를 자랑하곤 했었다. 그는 자신 앞에 있는 스테이크를 썰며 물었다.
“왜 안 좋아?”
“그냥요. 저랑은 잘 안 맞아요.”
그는 뭔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인혜를 응시했다.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인혜가 그와 사귀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뭐든 알았다는 듯이 훈계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잘 지내야지. 혹시 진로 문제 때문이야? 국문과랬지?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다.”
왈칵 짜증이 났다. 짜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가요?”
“취직이 잘 안 되니까.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하시겠지. 너는 졸업하고 뭐가 하고 싶은데?”
눈앞에 보이는 포크가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를 향해 포크의 예리함을 시험하는 대신 인혜는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었다. 고기가 질긴지 잘 썰리지 않았다.
“작가요. 소설 쓰고 싶어요.”
그는 인혜의 그릇을 가져가더니 자신의 그릇과 바꾸었다. 그의 그릇 위에는 스테이크들이 네모반듯한 정방형으로 잘려 있었다.
“확실히 부모님이 싫어할만 하네. 그런데 왜 소설가가 하고 싶은 거야?”
짜증이 치밀었다. 성은을 통해 인혜가 마음에 든다고 전해온 그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점수를 얼마나 깎고 있는지, 미처 상상도 못할 것이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아빠랑 싸웠어요. 다른 이야기하면 안 돼요?”
그는 그 이후에도 그래도 부모님과는 잘 지내야한다는 둥, 부모님 말씀 귀 담아 들으라는 둥의 말을 늘어놓았다. 식사가 끝나고 그와 헤어질 쯤, 성은에게 메시지가 왔다. ‘벌써 4번이나 만나면서 별 생각 없는 거야?’ 인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강가의 갈대들이 흔들렸다. 노을은 갈대들을 묘한 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차가운 빛이 내려앉을 것이다. 인혜는 강가에 앉아있었다. 강을 따라 기찻길이 흘렀다. 이곳에 오려면 철창 사이에 틈을 통과해야 했다. 대략 12살 때 발견한 이 틈은 메워지지 않았다. 그 틈을 지나면 바로 기찻길, 그 너머로 강이 흘렀다. 인혜는 이곳을 좋아했다. 마음이 복잡하면 찾아가는 비밀 공간, 그곳이 인혜에게는 철창을 넘어, 선로를 건너야 하는 강가였다.
선로를 건너 강가에 서면 그리 넓지 않은 강이 흘렀다. 강과 하천의 중간이었지만 강가라는 표현이 좋았다. 인혜는 정혁과 헤어지고 바로 강가로 왔다. 철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도시의 빛에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움직이는 갈대를 보며, 셰익스피어를 생각했다. 아저씨, 여자만 갈대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파스칼 씨는 좀 낫네요. 남녀 둘 다 갈대라고 했으니. 생각하는 갈대가 되어 흔들거렸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정해지지 않았다. 주인공의 이름은 혜인이었다. 혜인은 해가 떨어지는 바닷가의 절벽에 섰다. 하늘과 바다는 붉었다. 그도 붉게 젖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어디로 내딛는가. 앞이냐. 뒤냐.
학교 선배가 말해준 말이 생각났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니,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삶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성은은 정혁을 소개해주며 말했었다. ‘너 소개팅 가서 살기 싫다는 둥의 말만 해봐.’ 설마 그렇겠냐고 반문하자 ‘너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라고 답했다. 웃음이 났다. 보름달이 강에 떠오르자 인혜는 강가에서 일어났다.
소주병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일 것이다. 그러나 인혜는 반짝거리는 커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최종 퇴고 중이었다. 여전히 마무리를 고민하고 있었다. 꺼끌꺼끌 했다. 밖에서는 상을 차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운 냄새와 탄내, 역한 돼지냄새가 풍겨왔다. 오늘 안주는 곱창볶음 따위인 듯 했다. 밖에서는 아빠와 오빠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늘게 들렸다. 누구 목소리인 줄은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아빠와 오빠는 술을 먹고 인혜는 글을 고쳤다. 꺼끌한 맛이 남아있었지만, 마무리를 지었다. 이 이상 고쳐도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저장을 하고, 프린트를 했다. 혹시 모르니 신문사 전화번호도 저장했다. 잠시간 예열 후 레이저 프린트가 재빠르게 소설을 뱉어냈다. 뜨거운 종이를 받아들고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었다. 소설을 탈고할 때마다 한 세계의 끝을 느꼈다. 그건 뿌듯했고, 슬펐고, 아쉬웠다. 인혜는 세계를 곱게 접어 신문사 주소가 적힌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풀로 봉투를 봉했다.
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들어오며 모니터를 힐끗 봤다. 알콜이 아버지의 날숨을 타고 전해져왔다. 소주 몇 방울은 말에 맺혔다.
“너 밥은 안 먹어도 되냐? 소설인가 뭔가 그거 쓰냐? 시험기간 아니냐?”
인혜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품에 넣었다. 종이는 제법 식어있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껐다.
“배가 안 고프네요. 사이사이에 뭘 먹었더니……. 그리고 아직 시험 기간 아니에요.”
아버지는 인혜가 봉투를 챙겨놓는 것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밥은 제 때 제 때 먹고 다녀라. 속 버린다. 그럼 언제부터 시험인데? 얼마 안 남은 거 아니냐? 그래가지고 장학금 탈 수 있냐? 옆 집 아들내미는 벌써부터 시험 공부하드만? 소설이니 뭐니 쓴다고 지금 시험공부 안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당장 눈앞에 있는 건 하고 꿈 쫓아야지. 애도 아니고.”
아버지의 젖은 말이 줄줄이 이어졌다. 인혜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겉옷을 거칠게 끌어당기며 소리 질렀다.
“마지막 기회라면서요! 그 때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러라면서요. 이번 아니면 포기하라면서요! 그럼 지금은 좀 내버려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이러세요. 공부 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직 시험 기간 아니에요.”
인혜가 소리 지르자, 아버지는 버럭 화를 냈다.
“그 놈의 소설! 어차피 하지도 못 할 것! 니가 될 애였으면 진즉에 됐다. 니 관심사니 잘 알겠네. 그놈의 등단이라는 거에 니보다 어린애들이 안 되더냐? 내는 잘 모르겠는데 그럴 거다. 아마.”
“아빠!”
“시끄럽다. 내가 틀린 말 하나. 그 뭐냐 예술가 나부랭이들, 그 고상한 직종은 처음부터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재능 팔아 먹고사는데. 겨우겨우 해서 그 놈의 등단이라는 거 해봐야. 누가 월급 주나? 어?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이런 말해서 뭐하노.”
눈물이 왈칵 났다. 누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인혜는 그대로 집을 박차고 나왔다. 문을 닫기 전에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냐는 오빠의 외침이 들렸다.
강가에 왔다.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다. 터지려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어금니로 씹어 넘기며 발 가는 데로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철창이 보였다. 철창 너머로 선로가 보였다. 틈이 보였다. 인혜는 그 틈으로 기어들어갔다. 12살 때 처음 발견한 이후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혜는 틈을 통과하기 위해 몸을 더 구부려야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어야했다. 인혜는 틈을 기어들어갔다. 무릎과 손에 묻은 흙을 털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그믐달이 보였다. 강가는 깜깜했다. 강에만 밤하늘이 하나 더 있었다. 강과 하늘은 마주보고 있었다. 인혜는 갈대를 헤치고 들어가, 두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났다. 인혜는 소설이 든 봉투를 꺼내들었다. 봉투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인혜는 봉투를 가로로 쥐었다. 인혜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힘이 슬며시 들어갔다.
그 때, 인혜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유리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인혜는 소주병 부딪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소리를 죽였다. 숨을 죽였다. 소주병끼리 부딪치는 소리는 갈수록 크게 울렸다. 12살 이후로 강가에 인혜 말고 누가 찾아온 적은 없었다.
소주병 부딪치는 소리는 기어이 인혜 근처까지 왔다. 달달한 떡볶이 냄새가 퍼졌다. 아버지는 떡볶이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때 소리가 말했다.
“이인혜, 어디 있어?”
오빠였다. 인혜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내가 여기 있을 줄 어떻게 알았어?”
오빠는 피식 웃으며 소주를 꺼냈다. 항상 집에서 술상을 차리던 대로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오빠는 비닐봉지에서 제법 큰 종이를 꺼내더니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떡볶이와 순대를 꺼내 놓았다. 인혜는 오빠가 참 꼼꼼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너 갈 데가 어디 있다고? 내가 동생이 어디가는지도 모를까?”
인혜는 상황이 왠지 웃겨서 웃음을 터트렸다. 인혜가 혼자서 킥킥대고 있자 오빠가 이 인간이 왜 이러나하고 쳐다봤다.
“너 울던 눈으로 그렇게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이번에는 웃음이 아주 크게 터졌다. 어두운 강가에 인혜의 약간 높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인혜는 그렇게 한참 웃다가 오빠에게 물었다.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알았어? 여기 내 비밀 공간인데?”
“내가 13살부터? 나도 종종 왔어.”
인혜는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오빠가 13살이면 내가 12살 때부터?”
“응.”
인혜는 묘하게 배신감을 느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기차는 점점 다가와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내가 이 장소 알았을 때랑 똑같은 시기네?”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깠다. 그러고는 종이 잔에 술을 채워 인혜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자신의 잔에도 소주를 채웠다.
“응. 사실 네가 어딘가 가기에, 따라가다가 안 거거든.”
오빠는 그 말을 하며 소주잔을 들었다. 인혜가 고개를 흔들자, 오빠는 잔을 흔들었다.
“속상하잖아. 이럴 땐 마셔도 돼. 그리고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
오빠는 소주병을 톡톡 쳤다. 그때 기차가 곁을 지나며 강가가 순간 밝아졌다. 기차와 바라보는 방향이던 오빠는 인상을 쓰며 눈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소주가 조금 흘렀다. 붉게 부어오른 오빠의 뺨이 보였다.
“오빠 뺨 뭐야? 왜 그래?”
“뭐긴 뭐야, 우리 아버지 한 성격하신다는 증거지.”
오빠는 익살스럽게 말하며 소주잔을 흔들었다. ‘마치 이래도 안 마실 거야?’라고 말하는 듯해서 인혜는 잔을 들었다.
“나 술 못 마시는 거 알면서.”
“이럴 때는 한잔해도 돼.”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종이 잔이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바람소리가 대신 메웠다. 인혜는 겨우 한 잔의 술을 넘겼다. 오빠는 크~하는 소리를 내곤 말했다. 아빠 말 너무 심하더라. 그래서 내가 엄청 뭐라고 했어. 그런 거 같아. 오빠 뺨 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강을 따라 흘러갔다. 주거니 받거니, 소주병도 비어갔다. 오빠는 원래 이랬다. 12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난 후에 말 수가 급격히 없어졌다. 그리고 그 일 이후에는 말 수가 더 없어졌다. 아버지와 있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왜 이 강가가 좋냐?”
오빠는 소주를 따르며 인혜에게 물었다. 인혜는 발그스레해진 얼굴로 소주잔을 내밀었다. 바람에 갈대가 휘청거렸다.
“여기는 온전히 내 공간 같아.” 인혜는 그러며 철창 건너를 가리켰다. “저기랑 다르게 안 복작거리잖아.”
오빠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어렴풋이 보이는 틈을 바라보았다. 인혜도 그 틈을 슬쩍 바라보고 웃었다.
“저 틈은 요새 좀 작더라.”
오빠는 마주 웃으며 소주잔을 들었다. 소주잔을 맞대고 겨우 넘겼다. 소주가 목을 긁으면서 넘어갔다. 그 느낌에 진저리치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뜨자 눈앞에 떡볶이가 있었다. 오빠는 말없이 떡볶이를 인혜에게 내밀었다. 인혜가 떡볶이를 우물거렸다.
“우리가 많이 컸으니까.”
오빠는 그 말을 하며 강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곤 소주병을 들었다. 오빠는 인혜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짠. 오빠는 그리 말하며 종이컵을 부딪쳤다. 오빠는 소주를 비우고 인혜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인혜는 억지로 소주를 넘기고는 안주로 순대를 집어먹었다. 오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인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빠는 강가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을 했다.
“인혜야, 근데 아빠 말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라. 아빠는 그냥 걱정되고 현실적인 것 뿐이니까.”
“싫어. 그래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자기 입으로 마지막으로 기회 준다고 해놓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어디 있어.”
오빠는 다시 강가를 바라봤다. 어두운 강에 밤하늘이 흘렀다. 달이 일렁거렸다. 오빠는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진짜 아빠가 말 심하게 했지. 근데 인혜야, 그래도 아빠 너무 미워하진 마라. 아빠라고 뭐 그런 말 하는 게 좋겠나. 딸인데.”
인혜는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는 한숨을 쉬었다. 혼자서 소주를 따르더니 들이켰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인상을 쓰고 고심했다. 갈대가 뒤섞였다.
“인혜야, 저기 철창 보이제? 그 건너 불빛도 보이고.”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인혜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보이기도 했으니까. 철창이나 선로도 어렴풋이 보였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저기 도시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니 말대로 복작거리는 곳.” 인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물었다. “그러면 철창은 뭘까?”
“글쎄?”
오빠는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켰다. 오빠의 말에서 슬슬 술이 묻어나왔다.
“철창은 오지 말라는 거잖아. 못 오게 하는 거고.”
인혜는 물었다.
“그게 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오빠는 일단 들어보라고 했다. 오빠 말에 따르면 철창은 이쪽에 못 오게 하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있는 선로는 최후 경계선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일단 철창을 넘더라도, 선로를 넘어야한다는 것이다. 선로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선이라 말했다. 오빠는 스스로의 말에 주억거렸다.
“이쪽은 뭐고, 저쪽은 뭔데?”
“이쪽은 니 말대로 개인적인 공간, 저쪽은 사회적인 공간. 이쪽은 특별한 사람이 사는 곳, 저쪽은 보통 사람이 사는 곳.” 오빠의 웃음은 자조적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잘난 사람만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거잖아.”
이번에는 인혜가 소주를 들이켰다. 인혜의 얼굴은 어두운 밤에 보기도 불그스름했다. 인혜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꼭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리고 오빠 말은 내가 능력이 안 되니 그만 포기하라는 거야?”
오빠는 고개를 격렬하게 저었다. 머리카락이 갈대마냥 휘날렸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고 말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럴 능력이 되냐고. 스스로가 그렇게 믿으면 아빠가 뭐라고 하든지, 기찻길을 건너가. 니 삶이잖아.”
오빠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으나 말을 삼켰다. 멀리서 기차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기찻길은 저 멀리까지 늘어섰고, 그래서 밤이면 아주 멀리 있는 기차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인혜는 그 소리를 듣고, 물었다.
“선로가 경계선이면 기차는 뭔데?”
오빠는 재밌는 농담이라는 듯 웃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을 단죄하는 쇳덩어리지 뭐.”
인혜는 오빠가 웃으니 괜히 따라 웃었다. 그리고 농담하듯 물었다.
“기차가 매번 오는 건 아닌데?”
오빠는 이번에도 활짝 웃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웃음과 달랐다. 오빠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오빠는 술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수 없는 놈이 걸리는 거지. 뭐 사는 게 안 그러냐.”
인혜는 오빠의 무릎에 눈이 가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그러나 곁눈질로 힐끗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빠는 축구선수가 꿈이었으나, 7년 전 훈련 중에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오빠는 자기 무릎을 톡톡 두드리고는 일어섰다. 인혜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동생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주려고 고민 많이 했고만?”
오빠는 익살스럽게 주먹을 들어올렸다. 마치 꿀밤이라도 때릴 듯 시늉을 했다. 인혜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임마. 고생한 오빠 생각도 해줘라. 그러니까, 아까 말한 이야기도 생각 좀 해보고. 뭐……. 그냥, 이래저래 경계에만 서있지 말라고. 그게 제일 안 좋다더라.” 오빠는 손을 흔들며 그대로 선로를 넘어갔다. “나 먼저 간다. 천천히 와라.”
인혜는 오빠가 떠난 후 잠시간 그대로 강을 바라보았다. 오빠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건너가거나, 돌아가야 했다. 경계에 서있으면 안 된다. 인혜는 몸을 일으키고 선로를 넘었다. 담장 사이의 틈을 통과하려는 순간 소설이 생각났다. 소설이 어디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빠 생각을 하며 꺼낸 것까지만 기억이 났다. 다시 몸을 돌렸다. 선로로 다가가는 순간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바람에 밀려, 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졌다. 다행히 소설은 품 안에 있었다. 봉투는 완전히 차게 식어있었다. 인혜가 힘겹게 걸음을 올려 집에 도착했을 때, 구수한 내음이 반겼다. 식탁에는 된장찌개와 생선, 밥 등이 식어가고 있었다.
소설을 신문사로 부쳤다. 발표는 대략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시험 기간이 다가왔고, 과제가 몰려왔다. 기대감을 잊기 위해서라도 다른 일에 열심히 매달렸다. 그 사이에 정혁에게 몇 번 연락이 왔고, 종종 만나기도 했다. 성은의 독촉도 있었다. 사귀든지 말든지 사람 애태우지 말고 결정을 하란 소리였다. 저 정도면 어디 가서 안 빠지니, 애매해도 한 번 만나보라는 소리도 들었다. 무언가를 결정하기에는 너무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꿈의 끝자락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틈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커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때, 같은 과의 근영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식으로 상패를 주기 전에 작가에 미리 연락이 간다고 했다. 근영이는 경향신문에 냈다고 했다. 인혜가 낸 곳과 시상하는 날이 같았다. 그 후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참 우울해할 때, 정혁에게 연락이 왔다. 인혜는 정혁을 만나러 나갔다. 누구라도 필요했다.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은 일 있어?”
인혜는 파스타를 동그랗게 말다 말고 대답했다. 포크가 그릇에 힘없이 닿았다.
“신춘문예 떨어졌어요.”
정혁의 눈썹이 살짝 모였다. 핸드폰을 힐끗 봤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는 막 나온 피자를 자르며 물었다.
“신춘문예, 그거 1월 1일 쯤 발표하는 거 아냐? 아직 크리스마스도 전인데?”
정혁은 피자를 덜어서 인혜 앞에 두었다. 인혜는 치즈가 늘어난 피자를 바라보다가,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과 동기인 아이는 벌써 연락 받았어요. 당선자는 신문사에서 미리 전화해준대요.”
그는 덤덤하게 되물었다.
“모르는 번호라 안 받은 건 아니고?”
“혹시 그럴까봐. 신문사 번호 저장해뒀어요. 신문사라고…….”
인혜는 그렇게 말하며 샐러드만 뒤적거렸다. 인혜 앞의 파스타니 피자는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정혁은 멋쩍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안 왔어?”
“네…….”
인혜는 말끝을 흐렸고, 이번에는 정혁이 샐러드를 뒤적거렸다. 치커리만 포크에 찔렸다. 정혁은 ‘그래도 결과는 나와 봐야 아는 거지’라며 말을 끝냈다. 둘은 한참을 파스타를 말거나, 피자를 자르거나, 샐러드를 찌르거나 했다. 정혁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말했다.
“술 먹으러 가자.”
인혜는 피클을 뒤적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저 술 못 해요. 맛없어요.”
정혁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을 슬쩍 봤다.
“칵테일 먹으러 가자. 칵테일은 맛있어. 내가 살게.”
인혜는 마지못한 모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많은 술이 오갔다. 정혁은 도수가 낮고 맛있는 술을 끊임없이 시켰다. 깔루아밀크, 데낄라 선라이즈,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준벅 등이 테이블에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인혜는 제법 술이 올라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그러니까요. 꼭 수시 떨어진 기분이에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안 될 거라 생각했고, 안 되는 게 당연하지만, 막상 발표 날 되면 두근두근하다가, 떨어지면 아 역시 내가 그렇지……. 하게 되는 그런 기분? 알죠? 아 오빠는 잘나서 모르려나.”
정혁은 슬쩍 웃고는 답했다. 그도 서울대에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 인혜가 말하는 대로 안 될 줄 알았다는 것 보단, 억울한 기분이 강했지만.
“아냐 나도 알아. 나라고 이곳저곳 안 떨어져봤게. 그 기분 정말 싫지.”
인혜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혁은 핸드폰을 바라보고는 이만 일어나자는 소리를 했다. 인혜는 고개를 저었다. 정혁은 인혜를 추슬러 카운터로 갔다. 그 와중에 인혜의 가슴이 정혁의 팔에 닿았다. 정혁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술집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 근처에 있는 의자에 몇 분간 앉아있었다. 정혁의 손이 슬그머니 인혜의 손에 닿았다. 그대로 인혜의 손을 잡을 듯 말 듯 했다. 갑자기 닿은 손의 감촉에 놀랐다. 술기운이 가시는 듯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성은의 말이 떠올랐다. 이러든 저러든 결정해라. 정혁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나쁘지도 않았다. 온기가 그리웠다. 인혜는 정혁의 손을 잡았다.
그는 부득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술도 많이 마셨는데 위험하다고. 인혜는 안 그래도 된다고, 들렸다 갈 곳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망설였으나 이내 그러라고 했다. 가는 길에 오빠를 만났다. 오빠는 또 강가에 가냐고 물었다. 인혜는 그렇다고 했다. 오빠는 어두우니 조심하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와 헤어지고 강가로 향했다. 철창 사이에 난 틈을 기어들어갔다. 철창의 틈은 어느 순간부터 통과하기 빠듯했다. 그래서 무릎으로 기어야만 했다. 강가로 가는 틈은 좁았다. 틈을 통과하자마자 허리를 폈다. 손과 발에 묻은 흙들을 털어냈다.
하늘에는 상현달이 떠있었다. 상현달의 어슴푸레한 빛 사이로 별들도 보였다. 구름 하나 없었다. 도시 근처의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진 않았다. 그래도 드문드문 희망마냥 빛나고 있었다. 인혜는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까맣게 보이는 금속의 선들이 보였다. 그 철선은 어둠과 경계가 흐릿해지는 면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어디서인가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안과 밖을 구분 짓고 있었다. 인혜는 오빠가 하던 말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가로등 하나 없는 강은 또 하나의 밤이었다. 상현달 두 개가 인혜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의 눈 같다고 생각했다. 고양이 수염마냥 갈대들이 흔들렸다. 인혜는 앞으로 걸었다. 그 때,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계속 걸어가며 가방 속에 있을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취기가 올랐는지, 핸드폰을 꺼내다 발이 걸렸다. 기찻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호되게 넘어졌다. 핸드폰은 강가 근처로 날아갔다. 너무 아팠다. 그대로 기찻길에 사선으로 엎어져 있었다.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는 진동이 느껴졌다. 선로가 떨렸다. 예전 과학시간에 배운 고체가 기체보다 소리를 빨리 전달한다는 게 생각났다. 일어나야했다. 일어나기 싫었다. 살아서 뭐하나. 인혜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앞으로 내딛었다. 붉은 해보다 먼저 바다에 뛰어들었다. 빚만 남은 인생이다. 어차피 내 앞으로 있는 4천만 원의 빚을 갚기 위해 바라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할 것이다. 진동은 점점 커졌다. 인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진동은 점점 커졌다. 진동은 귀로 들리지 않았다. 몸으로 울려 퍼졌다. 진동은 갈수록 커졌다. 쇠바퀴가 선로를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진동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진동과 달랐다. 새로운 진동은 기차가 선로를 긁는 소리와 박자가 똑같았다.
불현 듯 진동이 머리를 때렸다. 진동은, 그 소리는 인혜에게서 나고 있었다. 심장이 무섭게 뛰고 있었다. 살아있다. 인혜는 삶의 자락을 붙잡았다. 선로를 붙잡았다. 손이 하얗게 되도록 붙잡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 때 기차가 인혜를 덮쳤다. 삶을 걷던 두 다리가 짓이겨졌다. 날아올랐다. 피가 튀었다. 피는 무채색의 밤하늘을 채색했다. 삶의 자락을 잡은 손가락이 끊겼다. 하얗게 질린 다섯 손가락이 밤을 날았다. 이윽고 쇳덩어리는 인혜의 머리를 덮쳤다. 피부가 찢어지며 하얀 두개골이 드러났다. 두개골이 부서졌다. 회백색 단백질 덩어리가 으깨졌다. 복숭아 빛을 담은 피가 흘러내렸다. 피는 강가의 언덕을 따라 조용히 흘렀다. 어울리지 않게 겨울에 핀 꽃이 있었다. 그 꽃은 아마 내년에 더 성대하게 필 것이다. 피는 계속 흘러 떨어져있는 핸드폰도 지났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통화 신문사’가 찍혀있었다. 피는 계속 흘러 강에 닿았다. 밤하늘은 복숭아 빛이 흘러들어오는 것과 상관없이 계속 흘렀다. 하늘에는 상현달이 떠있고, 별이 빛났다. 강에는 상현달이 떠있고 별이 빛났다. 달은 한쪽 눈으로만 복숭아 빛 눈물을 흘렸다. 뒤에서 소주병 깨지는 소리가 났다.
p.s. 짤막한 감상이라도 남겨주시면 다가오는 2012년, 복 받으실 거예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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